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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
영화를 통해 본 노동 이야기
나, 다니엘 블레이크
[153호] 2017년 03월 06일 (월) 이동희 기자dhlee@laborplus.co.kr
   
 

2016년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손에 넣었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 10년 만이다. 이번 그의 수상이 더욱 빛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경쟁 부문에서 <패터슨>의 짐 자머시, <줄리에타>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언노운 걸>의 다르덴 형제, <단지 세상의 끝>의 자비에 돌란 등 쟁쟁한 감독과 작품들을 제치고 수상했기 때문이다. 늘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우리 사회를 고발했던 켄 로치. 그의 은퇴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살펴볼까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개요 드라마 ⅼ 
영국, 프랑스, 벨기에
개봉 ⅼ 
2016.12.08. 
감독 ⅼ 
켄로치
출연 ⅼ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스, 

 

늙은 노동자의 초상
 “혼자서 50미터 이상 걸으실 수 있나요?”
“그렇소.”
“모자를 쓰듯 양팔을 높이 올리실 수 있나요?”
“사지는 멀쩡하다 했잖소. 내 의료 기록 보고 심장 얘기나 합시다.”
“대답부터 해주시면 안 될까요? 모자는 쓰실 수 있으시다는 거죠?”
“그래요.”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실 수 있나요?”
“손가락에는 이상이 없소. 심장에선 점점 멀어지는군.”
“혹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신 적 있나요?”
“심장 얘기를 하자는데 안 통하는 지금이 그렇소.”
“블레이크 씨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자격 심사에 득 될 게 없어요. 질문에만 답해주세요.”
 
이 영화는 질병 수당 지급 자격을 심사하는 담당자와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의 대화로 시작된다. 다니엘은 영국의 뉴캐슬에서 평생을 목수로 살아왔다. 심장이 나빠졌으니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일을 그만두고 정부에 질병 수당을 신청하게 된다. 하지만 자격심사 담당자는 원칙적인 질문만 할 뿐 도무지 다니엘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결국 다니엘은 참지 못하고 “난 심장마비 때문에 추락사할 뻔했소. 좋아서 쉬는 게 아니오. 심장 얘기부터 합시다”라고 대답해 버린다. 얼마 뒤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질병 수당 신청이 기각되었다”라는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급하게 관련 부서로 전화해보지만 모든 상담원이 연결 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지겨운 대기음을 2시간 가까이 들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겨우 연결된 상담원은 “저희 쪽 의료전문가 소견으로는 취업이 가능하다”라는 대답뿐이다. 결국 답답함을 못 참고 구직센터로 찾아가지만 다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고용대상자이니 구직 수당을 신청하거나 질병 수당 탈락 판정에 항고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필요한 서류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라고 하니, 평생 컴퓨터 근처도 안 가본 다니엘의 답답한 상황은 쌓여만 간다.
“차라리 집 한 채를 지으라고 하시오. 컴퓨터는 근처도 안 가 봤소.”
“디지털 시대잖아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독 켄 로치는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영국 복지 시스템 문제를 영화 시작부터 쉬지 않고 줄줄이 늘어놓는다.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인 그는, 사회주의 신념을 드러내는 <레이닝 스톤>, <빵과 장미> 등 노동자와 빈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나타낸 사실주의 영화를 많이 제작했다.

다니엘이 마주한 현실은 현재 영국에서 진행 중인 복지 제도 축소와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가난한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모습이다. 특히 다니엘과 같은 현실에 놓인 영국의 수많은 은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나라의 돈을 날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켄 로치는 이 끊임없는 증명의 과정을 영화에서 여과 없이 보여준다.

대처리즘, 복지 정책 대신 경제개혁 중시

1979년 영국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집권한 마거릿 대처는 그동안 노동당에서 고수해왔던 각종 국유화와 복지 정책을 과감히 버리고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개혁의 내용은 ▲복지를 위한 공공지출의 삭감과 세금 인하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조합의 활동 규제 ▲철저한 통화정책에 입각한 인플레이션 억제 ▲기업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외환관리의 전폐와 빅뱅(big bang) 등을 통한 금융시장의 활성화 등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심각한 실업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마거릿 대처의 정책을 사람들은 ‘대처리즘’이라고 칭한다. 대처리즘은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처의 시대가 지나가고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집권하게 된다. 토니 블레어 역시 국유화와 복지정책을 포기했다. 복지보다 시장경제를 중요시하는 그의 정책이 대처리즘과 비슷해 ‘대처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유화 정책 포기 ▲노동조합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복지국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금 대폭 인하 ▲정부의 재정지출과 차입의 축소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감면을 함으로써 전통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의 포기 ▲인플레이션 억제 등이 구체적 개혁 내용이다. 이러한 집권자들의 시대를 지나 현재의 영국은 복지 국가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앞에서 좌절하는 다니엘과 케이티. 점차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다니엘은 구직 수당 신청을 위해 노력한다. 평생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컴퓨터를 접하고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하라는 말에 모니터 화면에 마우스를 올려버리는 코믹한 모습도 보여준다. 끝나지 않는 정부와의 씨름에도 “난 포기 안 해. 개처럼 물고 늘어질 거야”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큼 힘든 처지에 놓여있는 케이티를 만나게 된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낯선 도시 뉴캐슬로 이사 온 케이티는 정부 보조금 없이 살기 힘든 싱글맘이다. 케이티는 길을 헤매다 관공서에 늦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금을 못 받는 상황에 직면한다.
“힘들어요 댄, 늪에 빠진 기분이에요.”
“자네는 이겨낼 거야. 이겨낼 수 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본 다니엘, 스치는 인연이지만 케이티와 두 아이들을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그날부터 케이티의 낡은 집을 수리해주고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모빌을 선물하는 등 정 많은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융통성 없고 인정이라곤 없는 복지 시스템에는 까칠한 그도 케이티와 두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게 대하며 용기를 준다.

특히 식료품 지원소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서 통조림을 까먹고 눈물을 흘리는 케이티의 모습, 벼랑 끝까지 내 몰린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케이티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다니엘은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려준다.

평생 목수로 몸 쓰는 일을 해온 다니엘에게 정부에서 요구하는 구직활동 증명 절차는 어렵기만 하다. 컴퓨터라는 장벽을 넘었더니 이번엔 이력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그가 종이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꼬깃꼬깃한 이력서를 본 직원은 “안 됐지만 4주 제재 대상으로 보고해야겠네요. 보조금이 끊길 테니 생계수단이라도 신청하세요”라고 잔인한 최후통첩을 내린다.

이제 영화가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다니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집으로 배달되는 독촉장을 보고 한숨 짓는, 집에 있는 가구를 모두 팔아버리는 힘없는 늙은이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시스템이라는 벽에 부딪혀 점점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고 병든 몸이 전부인 다니엘.

정부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의 외침은 저 멀리 사라져간다. 마지막까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닌 당신에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쉴 새 없이 확인한다. 그런 정부에게 다니엘은 마지막 목소리를 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코코넛과 상어 중 뭐에 사람이 더 많이 죽을까?”
“정답은 코코넛”
다니엘이 가볍게 던진 질문에 케이티의 아들 딜런은 해맑게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는 다니엘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코코넛처럼 익숙하고 사소한 것이 사람을 더 많이 죽인다는 것, 켄로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Kenneth Loach 케니스 로치

1936년 6월 17일 생 영화감독, 각본가

작품
젊은이의 일기, 커밍 아웃 파티, 아서 결혼의 파경, 
업 더 정션, 3 클리어 선데이, 캐시 컴 홈, 인 투 마인즈, 불쌍한 암소, 골든 비전, 빅 플레임, 케스, 가족 생활, 희망의 나날들, 블랙 잭, 사냥터지기, 외모와 미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파더랜드, 하층민들, 
숨겨진 안건, 레이닝 스톤,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랜드 앤 프리덤, 칼라송, 맥도날드 망신당하다, 
명멸하는 불빛, 내 이름은 조, 빵과 장미, 네비게이터, 스위트 식스틴, 2001년 9월 11일, 다정한 입맞춤, 티켓,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그들 각자의 영화관, 
자유로운 세계, 루킹 포 에릭, 루트 아이리쉬,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1945년의 시대정신, 지미스 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수상내역
제17회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 장편부문 대상
제4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품상
제4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제48회 칸영화제 FIPRESCI상
제8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품상
제15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비평상
제50회 시드니 영화제 장편소설부문 관객상
제59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제64회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제22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평생공로상
제6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제6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관객상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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